철원편



고석정

조선시대 임꺽정이 활약하던 철원의 대표적 명승지이자 한탄강의 비경을 품은 현무암 계곡

철원 8경 중 하나인 고석정은 한탄강 중앙의 고석바위와 정자, 그 일대의 현무암 계곡을 통틀어 부르는 이름이다. 610년 신라 진평왕 때 고석바위 맞은편에 2층 누각을 짓고 고석정이라 명명했다고 하며, 1560년 조선 명종 때 의적 임꺽정이 이 정자 건너편에 돌로 된 성을 쌓고 칩거했다고 전해진다. 누각은 6.25 전쟁 당시 소실된 것을 1971년에 복원하였고 1989년에 개축, 정비하였다. 강 중앙에 위치한 약 10m 높이의 거대한 기암봉에는 임꺽정이 은신했다는 자연 동굴이 남아있다.

고석정은 경치가 좋기로 이름난 한탄강 주변에서도 특히 절경이라 할 수 있다. 고석정에는 한쪽으로 현무암 협곡, 다른 한쪽으로는 화강암 절벽이 놓여있는데 두 암석은 깎이는 정도가 서로 달라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고석정은 남한대륙의 유일한 현무암 분출지이며, 1977년, 국민관광지로 개발되어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고석정에서 상류로 약 2Km 지점에 직탕폭포가, 하류로 약 2Km 지점에 순담계곡이 위치해 있으며, 넓은 잔디광장과 바이킹 등 놀이시설이 마련되어 있어 가족단위 여행객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 또한 시설관리사업소가 있어 안보관광도 함께 할 수 있는 관광의 최적지이기도하다. 

이곳은 기묘한 바위와 깎아 내린 듯한 벼랑 등으로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계곡에서는 보기 드문 하얀 모래밭이 천연적으로 형성되어 있다.




은하수교

유네스코(UNESCO)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된 한탄강유역 송대소에 위치한 한여울 길을 따라 국·내외 탐방객들이 자연스러운 동선으로 탐방할 수 있도록 은하수교가 자리하고 있다.

한탄강은 ‘큰 여울의 강’이란 뜻으로 계곡이 깊고 여울이 커서 붙여진 이름이며, ‘한’은 크다·넓다·맑다를 뜻하고 은하수를 뜻하기도 한다. 따라서 은하수교는 풍광이 수려하기로 이름난 ‘한탄강’에 ‘철원’의 지명을 추가하고, 별들로 이루어진 길을 뜻한다.

한탄강주상절리길 1코스인 동송읍 장흥리와, 2코스인 갈말읍 상사리를 연결하는 연장 180m, 폭3m의 “1주탑 비대칭 현수교”형식이고, 최대통행가능 인원은 약 2,311명이다.



제 2땅굴

남과 북의 엇갈린 만남,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발견된 남침용 땅굴

철원 제2땅굴은 북한의 남침용 땅굴로서 북한에서 군사분계선까지 2,400m, 군사분계선에서 우리쪽으로 1,100m, 총 3,500m 길이에 달하는 땅굴이다. 국군 초병이 경계근무 중 땅 속에서 울리는 폭음을 듣고 땅굴이 있음을 의심하게 되었으며 현대적 장비를 동원한 시추작업으로 땅굴의 존재를 확인했다. 수십일 간의 끈질긴 굴착 작업 끝에 1975년 3월 19일, 우리나라 지역에서는 두 번째로 이 땅굴을 발견했다. 지하 50~160m 지점에 있는 제2땅굴은 높이 2미터의 아치형 터널로서, 한 시간당 중무장한 병력 약 3만 명의 대규모 침투가 가능하도록 특수설계되어 있다. 땅굴 내부에는 대규모 병력이 모일 수 있는 광장이 있으며, 출구는 세 개로 갈라져있다. 현재 제2땅굴은 철의삼각전적지 개발 계획에 따라 안보 여행지로 개발되었으며 매해 많은 여행객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평화 전망대

초정밀 망원경으로 더욱 생생한 북녘 땅을 볼 수 있는 철원 평화전망대

 DMZ와 북한지역인 평강고원, 북한의 선전마을을 조망할 수 있는 철원 평화전망대. 초정밀 망원경시설과 최첨단 기술로 제작된 지형 축소판이 마련되어 있어 분단의 현실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곳으로서 모노레일카를 이용해 더욱 편안하고 안전하게 방문할 수 있다. 평화전망대 앞에는 독특한 형상을 한 ‘평화의 나무’가 서 있고, 6.25 전쟁 당시 실제 사용했던 탱크가 전시되어 있다. 또한 전망대 바로 옆에는 필승교회라는 자그마한 교회가 있다. 우리나라 최북단 교회이기도 한 이곳은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십자가 첨탑에 조명을 밝히는데 그 불빛을 북한 땅에서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로 2007년 11월에 개관, 1층 전시관, 2층은 관람관으로 DMZ 내의 자연 생태, 궁예도성의 성곽, 평강고원, 북한선전마을을 전망할 수 있으며, 민족 분단의 현실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곳이다.  또한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해 최신시스템인 모노레일 운행시설을 갖춰 편리한 이동과 더불어 주변의 비경도 감상할 수 있다. 



월정리역

남방한계선에서 가장 가까운 기차역, 달리고 싶은 철마의 안타까움과 만나다

월정리역은 경원선의 간이역이었으며, 남반한계선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기차역으로 철원 안보 여행의 대표적인 경유지이다. 원래 경원선은 서울에서 원산까지 가는 길을 잇던 산업철도로서 철원의 농산물과 원산의 해산물들을 수송하는 간선철도 역할을 했다. 현재 월정리역에 남아있는 기차의 잔해는 우리의 분단 현실을 알 수 있는 상징물로서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팻말이 안타까움을 더한다. 
현재의 월정역사는 철원안보관광개발사업의 일환으로 1988년에 복원한 것으로 철의삼각전적지관광사업소의 백마고지역 출발 관광투어를 이용해 월정리역까지 갈 수 있다. 제2땅굴과 평화전망대, 철원 노동당사 등 철원의 대표적인 안보 여행지를 한꺼번에 둘러볼 수 있는 여행 코스로 해마다 많은 이들이 이 투어 코스를 이용해 월정리역을 찾고 있다.

1913년 7월 10일 : 경원선 철원 ~ 복계 구간 개통에 따라 개업[3]
1934년 12월 8일 : 역사 신축 준공
1950년 6월 25일 : 한국 전쟁 발발로 자연히 폐지
1988년 : 비무장지대의 남방한계선(SLL)에서 현 위치로 이전 복원
2015년 8월 5일 : 경원선 백마고지 ~ 월정리 단선 비전철 복원 구간 기공식이 백마고지역에서 개최
2016년 6월 17일 : 경원선 백마고지 ~ 월정리 구간 공사 중단



노동당사

전쟁 당시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북한 노동당의 철원군 당사

이곳은 8.15 해방 이후 북한이 공산독재 정권 강화와 주민 통제를 위해 건립해 6.25 전쟁 이전까지 사용했던 북한 노동당의 철원군 당사다. 이 건물을 지을 당시 북한은 성금이라는 구실로 1개 리당 백미 200가마씩을 착취했으며, 인력과 장비도 강제로 동원했다. 그러나 건물의 내부를 지을 때는 비밀 유지를 위해 공산당원 이외에는 동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북한은 이곳에서 철원, 김화, 평강, 포천 일대를 관장하면서 양민과 애국인사들을 대상으로 체포, 고문, 학살 등 무자비한 만행을 저질렀다. 당시의 만행이 어찌나 끔찍했는지 한 번 이곳에 끌려들어가면 시체가 되거나 반송장이 되어 나왔다고 한다. 건물 뒤 방공호에서는 많은 인골(人骨)과 만행에 쓰였던 실탄, 철사줄 등이 발견되기도 했다.
철원 노동당사는 3층 건물로 지어졌는데 6.25 전쟁 당시 파괴되어 건물의 외벽만 남아있는 상태다. 외벽에는 전쟁 당시 그을린 자국과 포탄자국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그러나 인근 건물들이 모두 파괴되어 사라졌음에도 유독 이 건물만 남아있는 것을 보면 당시 얼마나 견고하게 지어졌는지 짐작할 수 있다. 2002년 5월 27일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일부 구조체의 철근콘크리트 사용과 화강석과 콘크리트, 벽돌 및 목재의 혼용을 통해 당시의 건축일면을 엿볼 수 있고, 분단과 전쟁의 비극을 증언하는 중요한 자료로써, 현재 안보관광지로 활용되고 있다. 최근, 통일기원예술제, 열린 음악회 등 평화기원행사가 열리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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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창고는 일제강점기하 얼음을 보관하던 창고, 고대부터 현재까지 얼음 보관의 역사를 증명하는 곳으로 한눈에 보기에도 오랜 세월을 견뎌온 듯한 네모난 건물이다. 오직 기능적인 용도만을 위해 만들어진 듯 어떤 장식적인 부분도 보이지 않는다. 철원 얼음창고는 일제강점기하에 어느 일본인 식당 주인이 개인용도로 쓰기 위해 세운 콘크리트 단층 건물이다. 겨울에 산명호(山明湖)의 얼음을 채취하여 이곳에 보관하였다가 하절기에 각 업소에 판매했다고 한다. 6·25 전쟁 당시 거의 파괴되고 현재는 벽체의 잔해만 남아 있다. 철원 얼음창고는 2002년 5월 27일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24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철원 농산물검사소는 일제 강점기였던 1936년경 철원지방의 농산물 품질을 검사하던 공공기관의 건물이었다. 원래 이름은 ‘곡물검사소 철원출장소’로서 이름난 곡창지대였던 철원평야에서 생산된 풍성한 농산물들이 이곳에 모였다. 네모반듯한 모양에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철원 농산물검사소는 근대건축의 특징을 잘 갖추고 있어 현재 등록문화재 제25호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 구철원 시가지 유적 중에서는 거의 완전한 형태로 보존되어 있는 유일한 건물이기도 하다. 내부는 많이 훼손되어 있지만 두꺼운 벽면과 상하로 긴 창, 기와를 올린 경사지붕 등 근대 건축물의 특징이 잘 살아있어 당시의 시대상을 짐작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소이산

소이산은 평야 위에 우뚝 솟아있는 해발 362m의 작은 산이다. 산의 크기는 작지만 때묻지 않은 자연을 간직하고 있으며, 전방지역으로는 각 고지와 태봉국도성지, 평강고원 등을 바라 볼 수 있고, 주변의 지형이 평탄해 정상에서 바라보는 탁 트인 전망이 인상적인 곳이다. 소이산은 오랫동안 군사지역으로서 일반인들의 출입이 통제되어 왔던 곳이다. 오랜 시간에 걸친 협의 끝에 생태숲 녹색길을 조성하면서 일반에 공개된 이곳은 훼손되지 않은 울창한 산림과 깨끗한 생태환경이 어울려 찾는 이들에게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전해준다.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의 총 구간은 4.8Km이며, 총 3개의 세부 길이 조성되어 있다.
‘지뢰꽃길(1.3Km)'은 분단된 우리의 현실과 그 속에서 다시 피어나는 희망을 표현한 곳으로 지뢰안전지대와 GOP를 연상시키는 길이다. ’생태숲길(2.7Km)'에서는 자연 그대로의 오솔길을 걸으며 소이산의 생태환경을 체험할 수 있다. ‘봉수대 오름길(0.8Km)‘은 소이산이 품고 있는 드넓은 철원·평강평야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정상으로 가는 길이다. 정상에서 시원하게 펼쳐지는 평야의 모습에 가슴 속까지 상쾌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때묻지 않은 자연속으로,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 
 지뢰지대의 안전과 지역의 특수성을 고려한 펜스설치는 자연 그대로의 울창한 산림과 어우러지며 때 묻지 않은 자연 생태계는 찾는 이에게 큰 마음의 안식을 주고 있습니다


백마고지역

남북분단과 6.25 전쟁 이후 철원에 세워진 최초의 철도역이다. 2019년 9월부터 운행이 중단되었으나 이전에는 하루 2회 열차가 출발했다. 


백마고지 전적지

1952년 10월, 철원 대마리에 위치한 해발 395M의 이름없는 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격전이 벌어졌다. 열흘간 이어진 12차례의 공방전으로 고지의 모양마저 변했는데, 이 모양이 마치 백마가 누워있는 모습과 같다고 하여 ‘백마고지’라고 부르게 되었다.
전투가 치열했던 만큼 사망자가 양측을 합해 2만여 명에 이를 정도였으며, 이들을 기리기 위해 1985년 백마고지가 보이는 곳에 위령비를 세웠다.
위령비 주위에 위치한 기념관은 회고의 장, 기념의 장, 다짐의 장 등 세 부분으로 나누어 건립되었으며 전사자를 추도하고, 통일의 염원과 전승을 기념하고, 전망대와 함께 국민 안보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세모발자국

6.25 전쟁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강원도 철원군 대마리 역사문화관 ‘세모발자국’이 개관했다.
철원군은 23일 철원읍 대마리 민통선 마을 안에 6.25전쟁의 상흔과 굴곡진 역사를 간직한 역사문화관 세모발자국을 전날 개관했다고 밝혔다. 세모발자국은 대마리 입주민들의 개척 역사를 기록· 보존하고 주민들에게 문화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건립됐다.
대마리 문화역사관 이름인 세모발자국은 지뢰밭 상징인 ‘세모’와 1967년부터 황무지를 개척하며 전쟁 이후 지뢰로 희생된 입주민들의 ‘발자국’을 의미해 붙여졌다.
전체 207㎡ 규모에 영상관 1곳, 전시관 3곳, 전시체험관 1곳, 마을 카페 1곳 등 6개 공간으로 꾸며졌다. 전시 공간은 대마리 입주 1세대 마을 주민들의 증언과 역사적 자료를 바탕으로 기획했다. 전쟁 이후 지뢰와 버려지다시피했던 척박한 땅을 피와 땀으로 일궈가는 과정을 전시물로 표현했다.
6·25전쟁 당시 철원지역 일대는 철의 삼각 전투로 인해 쑥대밭으로 변했고 대마리 뒤쪽에 위치한 백마고지에서는 처절한 전투가 벌어졌다. 전쟁이 멈춘 뒤 마을 뒤편으로 비무장지대(DMZ)가 들어서는 등 북한과 대치하는 최전선으로 변하면서 민간인들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땅으로 방치됐다.
정부는 전쟁 이후 부족한 식량문제를 해결하고 허술한 휴전선 목책 사이로 북한 간첩들이 넘어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67년 대마리에 150가구를 입주시켰다. 하지만 쑥대밭이 된 대마리는 불발탄과 지뢰가 곳곳에 널렸고 길과 수리시설이 없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다. 입주민들은 개간 과정에서 폭발물 사고로 목숨을 잃는 등 피해를 보면서도 척박한 땅을 개척해 현재 대마리는 전국 유명 쌀 생산지로 변모했다.
전시공간은 대마리 입주 1세대 마을주민들의 증언과 역사적 자료를 바탕으로 기획됐다. 또 대마리 주민들이 전쟁 후 어려운 환경에 맞서 피와 땀으로 평화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전시물로 표현돼 눈길을 끈다.


금강산 옛철길

금강산 전기철도 교량은 1919년에 착공한 한국 최초의 전기철도인 금강산선이 한탄강을 건너는 교량이다. 1926년에 건립되었으며, 당시 금강산을 오갔던 경원선은 철원군의 철원역과 금강산의 내금강역을 연결하였던 철도로, 총 거리 116.6㎞의 관광철도였다. 일제 강점기 자원수탈의 목적으로 지어진 다른 철도노선과는 달리 관광을 목적으로 건설된 철도라는 점이 특이하다. 금강산 전기철도로 인해 상대적 오지였던 강원도 내륙의 발달이 촉진되기도 했다. 한국 최초의 전기 철도였기에 금강산전철이라고 불렸으며 운임은 당시 쌀 한가마 값인 7원 56전으로 상당히 비싼 편이었다. 
1936년 연간 관광객이 약 15만 4천명이었다고 추정된다. 1940년 6월 조선총독부 철도국이 발행한 열차시간표에는 국철과 직결 운행하는 열차편도 존재하였다. 일 8회 운영하며 내금강까지 4시간 반이 걸렸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금강산 전기철도는 일제 강점기 말기에는 지하자원 수탈의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광복 이후 전 구간이 38선 이북에 있었던 탓으로 북한 국영철도의 통제 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북한군에 의해 군수물자 수송에 이용되기도 하였다. 
1950년 6.25 전쟁 이후 휴전협정을 맺게 되었고 비무장지대를 통과하는 금강산 전기철도는 사실상 폐선되었다. 군사 분계선 주변을 돌아 흐르는 한탄강 상류에 금강산 전기철도의 교량 일부가 남아 있다.한국 근대사의 비애가 녹아 있는 이 철도 교량은 한때 열차가 달렸다는 흔적만 남긴 채 역사 속에 묻혀 있었으나, 2004년 9월 4일 등록문화재 112호로 지정되었고 2007년 관광자원화를 위해 50여년 만에 처음으로 균열된 교대와 썩은 상판 등의 전면 보수작업을 거쳐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 분단의 상처를 보여주는 옛 경원선 철길과 철교는 한탄강 최상류의 훼손되지 않은 자연경치와 어울리면서 최근 안보 여행지로 각광받고 있다.


DMZ생태평화공원 

철원 생창리에 위치한 DMZ 생태평화공원은 환경부·국방부(육군 제3사단) 와 철원군이 공동협약을 맺고 전쟁, 평화, 생태가 공존하는 DMZ의 상징적 메시지를 전세계에 전달하는 곳으로 현재까지 민간인에게 한 번도 개방되지 않았던 미지의 세계를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2개의 탐방코스를 마련하여 조성된 공원이다.
제1코스인 십자탐 탐방로는 육군 제3보병사단에서 북한에 사랑과 평화가 전달되기를 기원하며 성재산 위에 설치한 십자탑을 전망시설로 활용하여 남북한의 철책과 진지를 직접 볼 수 있는 곳으로 DMZ 내부의 자연환경과 한반도의 냉전 현실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제2코스인 용양보 코스는 6.25전쟁 때의 치열한 격전지 한가운데에 위치한 곳으로 현재에는 암정교와 금강산 전철의 도로원표에서 전쟁의 흔적을 느낄 수 있으며,DMZ 통제구역 내에 위치하여 국내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아름다운 호수형 습지의 자연환경을 관찰할 수 있는 곳이다.



승리 전망대 

군사분계선 248Km의 정중앙에서 바라보는 멀고도 가까운 땅. 남북 분단의 현장을 바라보다.

승리전망대는 해발 495m의 전망대로, DMZ 부근에 위치한 여러 전망대들 가운데 특히 북한의 모습을 관찰하기에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DMZ에서 북한의 감시초소와 가장 근접한 곳이기 때문이다. 2002년에 개관하였고, 철원군 근남면 마현2리에 위치해 248Km에 이르는 군사분계선의 정중앙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는 우리 지역인 대성산, 적근산, 삼천봉이 한눈에 들어오며 오성산과 금성지역, 광삼평야, 아침리 마을 등 북한 지역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또한 승리전망대에서 잡초 속에 묻혀 있는 금강산 전철길 또한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승리전망대는 개인적으로 관람할 수 없으며, 마현리의 승리전망대 매표소에서 신청서를 작성한 후 정해진 시간에 따라 인솔자의 인솔하에 투어가 진행된다.